문화원구(文化園區)
삼지문 문화원구(三地門文化園區)
1.대만원주민족 개요
대만의 인구 구성을 살펴 보면, 현재 크게 세 가지 민족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본성인들은 17세기경 대륙에서부터 이주하여 계속 거주하고 있던 한족들을 말하며, 외성인들은 1949년 국공내전 전후로 국민당을 따라 대만으로 이주해온 한족들을 말합니다. 이들 두 그룹의 한족들의 비율이 각각 85%와 13%로, 현재 대만 전체 인구의 대부분인 9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2%를 차지하고 있는 민족이 바로 17세기에 한족들이 이주하기 이전부터 대만에서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입니다. 2010년 기준으로 약 51만명의 원주민족이 추산되고 있으며, 한족화된 원주민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대만의 국토는 우리나라의 지형과 유사하게 서저동고의 특색을 띄고 있는데, 원주민들이 주로 섬 동쪽의 산맥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과거에는 고산족 또는 산지동포라고도 불렸습니다. 현재는 대만 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에는 원주민족으로 정식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대만의 원주민들은 말레이-폴리네시아계에 속하며,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서로 다른 100여 개의 원주 민족들이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등을 가지고 살고 있었으나, 한족들의 유입으로 인한 융화 및 항일 운동 중의 멸족 등의 이유로 인해 현재는 공식적으로 14개의 소수 민족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남아있다고 합니다. 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대만의 원주민들은 다시 14개의 소수 종족으로 나뉘는데, 대표적으로 아미족, 타이야족, 부눙족, 루카이족 등이 있습니다. 이들 원주종족들은 고증 가능한 역사 유적 등으로 추산해볼 때 대만섬에서 약 5000년 이상을 살아온 것으로 파악됩니다.
사실 현재 대만에서도 원주민들의 전통생활을 자연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깊은 산골 혹은 대만 주변의 작은 도서지방에서는 아직 원주민들의 전통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겠으나, 교통 환경이 좋지 않아 접근이 어렵습니다. 이에 대만 정부는 수년 전 주요 9개 원주민들의 특징적/전통적 풍습을 모아 대만 북부지역에 구족촌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으며, 각 원주 민족들의 주요 밀집주거지역에 그 해당 민족별 문화관을 지어 대중들에게 공개하였습니다.
이러한 원주 민족 보호 사업의 일환으로 이 곳 “대만원주민족문화원구”에서 정부가 추가로 인정한 민족들까지 추가하여 총 14개 종족의 문화를 그대로 보존한 민속촌을 조성하여 그들의 전통생활 풍습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핑둥현 마자향에 위치한 이곳 원주민족 문화원구는 가오슝 시내에서 약 1시간 10분, 불광산에서 약 40-50분 가량 떨어진 산악지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본래 이 핑동현의 동북부 지역은 대만의 원주민족 중 6개 민족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원주민족들의 문화 풍습이 그대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지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원 입구로 들어가면 각 원주민족들의 생활상과 풍습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을 관람하고, 이후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면 전통 공연장에서 원주민족들의 전통 공연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통 공연은 매일 평일에는 오후 2시와 4시 하루 2차례, 주말 및 공휴일에는 하루 3차례씩 공연을 진행하는데, 특히 9월 추수 축제 기간에는 더욱 더 성대한 전통 춤과 노래, 풍습 등을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2%를 차지하고 있는 민족이 바로 17세기에 한족들이 이주하기 이전부터 대만에서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입니다. 2010년 기준으로 약 51만명의 원주민족이 추산되고 있으며, 한족화된 원주민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대만의 국토는 우리나라의 지형과 유사하게 서저동고의 특색을 띄고 있는데, 원주민들이 주로 섬 동쪽의 산맥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과거에는 고산족 또는 산지동포라고도 불렸습니다. 현재는 대만 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에는 원주민족으로 정식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대만의 원주민들은 말레이-폴리네시아계에 속하며,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서로 다른 100여 개의 원주 민족들이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등을 가지고 살고 있었으나, 한족들의 유입으로 인한 융화 및 항일 운동 중의 멸족 등의 이유로 인해 현재는 공식적으로 14개의 소수 민족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남아있다고 합니다. 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대만의 원주민들은 다시 14개의 소수 종족으로 나뉘는데, 대표적으로 아미족, 타이야족, 부눙족, 루카이족 등이 있습니다. 이들 원주종족들은 고증 가능한 역사 유적 등으로 추산해볼 때 대만섬에서 약 5000년 이상을 살아온 것으로 파악됩니다.
사실 현재 대만에서도 원주민들의 전통생활을 자연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깊은 산골 혹은 대만 주변의 작은 도서지방에서는 아직 원주민들의 전통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겠으나, 교통 환경이 좋지 않아 접근이 어렵습니다. 이에 대만 정부는 수년 전 주요 9개 원주민들의 특징적/전통적 풍습을 모아 대만 북부지역에 구족촌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으며, 각 원주 민족들의 주요 밀집주거지역에 그 해당 민족별 문화관을 지어 대중들에게 공개하였습니다.
이러한 원주 민족 보호 사업의 일환으로 이 곳 “대만원주민족문화원구”에서 정부가 추가로 인정한 민족들까지 추가하여 총 14개 종족의 문화를 그대로 보존한 민속촌을 조성하여 그들의 전통생활 풍습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핑둥현 마자향에 위치한 이곳 원주민족 문화원구는 가오슝 시내에서 약 1시간 10분, 불광산에서 약 40-50분 가량 떨어진 산악지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본래 이 핑동현의 동북부 지역은 대만의 원주민족 중 6개 민족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원주민족들의 문화 풍습이 그대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지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원 입구로 들어가면 각 원주민족들의 생활상과 풍습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을 관람하고, 이후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면 전통 공연장에서 원주민족들의 전통 공연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통 공연은 매일 평일에는 오후 2시와 4시 하루 2차례, 주말 및 공휴일에는 하루 3차례씩 공연을 진행하는데, 특히 9월 추수 축제 기간에는 더욱 더 성대한 전통 춤과 노래, 풍습 등을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2.대만원주민족과 세계남도어계민족과의 관계
대만의 원주민족은 일반적으로 17세기 중국 대륙 근해 지방에 살던 민족들이 대량으로 대만으로 이주하기 이전부터 이미 대만 및 대만 인근 도서지방에 살고 있던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 상으로 남도어계(Astronesian)에 속하는데, 청나라 시기에는 이들 원주민족들을 일컬어 ‘번족’이라고 불렀으며,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고사족’이라는 뜻의 Takasago라고 불리다가 국민당이 대만에 들어온 후에 다시 이들을 ‘산지동포’와 ‘평지동포’로 구분하여 불렀습니다.
민족 간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1994년 이름을 ‘원주민’으로 개정하였다가, 후에 다시 ‘원주민족’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남도어계 민족은 주로 동남아시아 중남 반도와 말레이시아 반도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뿐만 아니라 인도양과 태평양에 있는 도서 지방에도 퍼져있어, 동쪽으로는 남미 대륙의 이스터섬,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마다가스카르 섬, 북으로는 대만, 남으로는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남도어계 민족의 분포 지역은 매우 광활합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뉴기니 섬 등을 많은 섬 등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남도어계 민족들은 동남아시아 등지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인구의 총합은 약 2억 여명 가까이 됩니다.
남도어계 민족들의 분포 영역이 매우 넓고, 그들의 거주 환경 차이가 매우 큰 데다가 수 천 년의 역사까지 누적되어, 그들의 문화는 매우 풍부하고 독특하며 다원화되어 있습니다.
인류 학자의 연구를 근거로 하면, 남도어계 민족 문화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산간 지방에 화전 방식으로 농작을 주로 하며, 뱀과 해충, 습기를 피하기 위해 집을 지을 때 지면과 거리를 두고 높이 짓습니다.
빈랑이라는 열대 과일을 자주 먹고 소쿠리나 직물을 만드는데 능하며 어획 활동을 통해 식량을 얻는 것 역시 남도어계 민족의 특징입니다.
남도어계 민족 분포 상에서 가장 북단이 바로 대만인데, 적지 않은 증거들이 대만과 남태평양 군도의 남도민족 사이에 매우 오래된 문화 교류가 이어졌음을 나타내 고립된 민족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만에 거주하는 원주 민족의 인구수는 약 44만명 이상으로, 전 세계 남도어계 민족 인구에서 0.1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록 인구 비율은 매우 적으나, 남도어계 민족의 기원과 남태평양으로 이동하는 과정 중 대만이 차지하는 지리적 관련성으로 인해 고고학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수천 년 전 남도어계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데 큰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만의 남도민족 구역은 회교, 기독교, 천주교 문명의 영향을 받아, 대만의 원주민족은 상대적으로 독특한 문화와 풍습들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 상으로 남도어계(Astronesian)에 속하는데, 청나라 시기에는 이들 원주민족들을 일컬어 ‘번족’이라고 불렀으며,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고사족’이라는 뜻의 Takasago라고 불리다가 국민당이 대만에 들어온 후에 다시 이들을 ‘산지동포’와 ‘평지동포’로 구분하여 불렀습니다.
민족 간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1994년 이름을 ‘원주민’으로 개정하였다가, 후에 다시 ‘원주민족’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남도어계 민족은 주로 동남아시아 중남 반도와 말레이시아 반도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뿐만 아니라 인도양과 태평양에 있는 도서 지방에도 퍼져있어, 동쪽으로는 남미 대륙의 이스터섬,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마다가스카르 섬, 북으로는 대만, 남으로는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남도어계 민족의 분포 지역은 매우 광활합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뉴기니 섬 등을 많은 섬 등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남도어계 민족들은 동남아시아 등지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인구의 총합은 약 2억 여명 가까이 됩니다.
남도어계 민족들의 분포 영역이 매우 넓고, 그들의 거주 환경 차이가 매우 큰 데다가 수 천 년의 역사까지 누적되어, 그들의 문화는 매우 풍부하고 독특하며 다원화되어 있습니다.
인류 학자의 연구를 근거로 하면, 남도어계 민족 문화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산간 지방에 화전 방식으로 농작을 주로 하며, 뱀과 해충, 습기를 피하기 위해 집을 지을 때 지면과 거리를 두고 높이 짓습니다.
빈랑이라는 열대 과일을 자주 먹고 소쿠리나 직물을 만드는데 능하며 어획 활동을 통해 식량을 얻는 것 역시 남도어계 민족의 특징입니다.
남도어계 민족 분포 상에서 가장 북단이 바로 대만인데, 적지 않은 증거들이 대만과 남태평양 군도의 남도민족 사이에 매우 오래된 문화 교류가 이어졌음을 나타내 고립된 민족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만에 거주하는 원주 민족의 인구수는 약 44만명 이상으로, 전 세계 남도어계 민족 인구에서 0.1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록 인구 비율은 매우 적으나, 남도어계 민족의 기원과 남태평양으로 이동하는 과정 중 대만이 차지하는 지리적 관련성으로 인해 고고학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수천 년 전 남도어계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데 큰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만의 남도민족 구역은 회교, 기독교, 천주교 문명의 영향을 받아, 대만의 원주민족은 상대적으로 독특한 문화와 풍습들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3.삼지문 조직연혁
원주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보호하고 유지하고자, 학술 연구와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 교육 및 관광 사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대만 정부가 1965년도에 세운 시행 강령에 따라, 핑동현 마가향이 원주민족 특별 보호 구역으로 선정되어 산지문화촌이 설립되었으며, 1969년도에는 대만 중앙 연구원에 민족 연구원에 의뢰하여 전반적인 계획이 완성되었고, 이후 13개 족의 원주민족 문화를 포함한 ‘대만 산지 문화 원구’라 명명되어 1976년 7월 18일 현재의 산지 문화 원구가 정식으로 대외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곳의 관리 단체는 여러 차례 개명을 거쳐 1991년에 이르러 ‘행정원 원주민족 위원회 문화 원구 관리국’ 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르고 있으며, 문화 원구의 각종 전시와 공연, 개발 및 관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4.대만원주민족의 기원
현재 대만의 원주민족 기원은 크게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원주민족의 발원지가 섬 바깥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만이 남도어계 조상들의 본 주거지였다는 설입니다.
전자가 비교적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로써, 언어와 고고학적 증거, 문헌 자료, 신화 및 전설 등 여러 방면에서 원주민족의 선조가 대륙의 동남쪽 연해에서 왔다는 것을 논증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심지어 대만에 원주민족들이 이주해온 연대를 추측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새하족과 태아족의 경우 기원전 3000년 전 선사 시대에 이미 대만에 터를 잡았으며, 배만족과 비남족의 경우 동남아시아 거석 문화의 중흥기 시절 대만으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두 번째 설인 대만이 남도어계 선조들이 살던 지역이었다는 의견은 비교적 최근 나온 주장으로, 여러 언어 학자들이 남도어계 민족들의 언어를 역추적하여 대만이 남도어계 민족의 뿌리였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학설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아직 여러 논점에서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원주민족의 발원지가 섬 바깥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만이 남도어계 조상들의 본 주거지였다는 설입니다.
전자가 비교적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로써, 언어와 고고학적 증거, 문헌 자료, 신화 및 전설 등 여러 방면에서 원주민족의 선조가 대륙의 동남쪽 연해에서 왔다는 것을 논증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심지어 대만에 원주민족들이 이주해온 연대를 추측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새하족과 태아족의 경우 기원전 3000년 전 선사 시대에 이미 대만에 터를 잡았으며, 배만족과 비남족의 경우 동남아시아 거석 문화의 중흥기 시절 대만으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두 번째 설인 대만이 남도어계 선조들이 살던 지역이었다는 의견은 비교적 최근 나온 주장으로, 여러 언어 학자들이 남도어계 민족들의 언어를 역추적하여 대만이 남도어계 민족의 뿌리였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학설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아직 여러 논점에서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5.가무장(歌舞場)
대만 원주 민족 전통 문화의 참 모습과 가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문화 원구에서는 각 원주 민족들의 가무를 조사하고 수집한 후 재차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압축하여 여러분들에게 원주 민족들의 풍토와 민족 정서, 문화의 정수 등을 선사합니다. 가무 공연은 각지에서 올라온 원주 민족 동포들이 직접 원주 동포들의 전통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열정적인 동작 위에 화려한 복식이 더해져 여러분들에게 각 종족의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를 선보여 드립니다.
예를 들어 비남족(卑南族)의 공연을 본다면, 우리는 비남족 남성들의 출생에서부터 성년기에 이르는 성장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생활 속 훈련이나 남녀 간 교제 시에 추던 가무 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노개족(魯凱族) 공연의 경우에는 원주 민족들의 전설에서 회자되는 인간과 뱀의 사랑 이야기가 로맨틱하게 꾸며집니다. 아미족(阿美族)의 공연은 가을에 풍년이 나면 즐기던 축제인 풍년제의 가무를 성대하게 보여줍니다.
여러분들의 원주 민족 문화에 대한 체험을 한층 더 도와 드리기 위해, 문화원구에서는 관람객들을 직접 무대 위에 초대하여 원주 민족들과 함께 기본적인 춤 동작을 추기도 하여, 배만족(排灣族) 춤의 우아함이나 아미족의 무곡의 경쾌함 등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문화원구에서는 녹음 테이프 및 녹화 영상을 제작하여, 각 원주 민족들의 전통 가무 소개 외에도, 현대식으로 재창조된 원주 민족들의 가곡들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비남족(卑南族)의 공연을 본다면, 우리는 비남족 남성들의 출생에서부터 성년기에 이르는 성장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생활 속 훈련이나 남녀 간 교제 시에 추던 가무 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노개족(魯凱族) 공연의 경우에는 원주 민족들의 전설에서 회자되는 인간과 뱀의 사랑 이야기가 로맨틱하게 꾸며집니다. 아미족(阿美族)의 공연은 가을에 풍년이 나면 즐기던 축제인 풍년제의 가무를 성대하게 보여줍니다.
여러분들의 원주 민족 문화에 대한 체험을 한층 더 도와 드리기 위해, 문화원구에서는 관람객들을 직접 무대 위에 초대하여 원주 민족들과 함께 기본적인 춤 동작을 추기도 하여, 배만족(排灣族) 춤의 우아함이나 아미족의 무곡의 경쾌함 등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문화원구에서는 녹음 테이프 및 녹화 영상을 제작하여, 각 원주 민족들의 전통 가무 소개 외에도, 현대식으로 재창조된 원주 민족들의 가곡들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6.생활 행태 전시관(生活型態展示館)
원주 민족의 생활 습관을 모형을 통해 전시해 놓은 생활 행태 전시관은 가무장의 바로 뒤 편에 위치하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대청 전시장
비 정기적으로 문화 원구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거행하는 장소입니다. 평소에는 여러 조각품들로 꾸며진 관람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2. 산촌 생활 형태 전시실
일반 관람객들에게 원주 민족의 전통과 원시적 산야 생활의 모습을 실물 크기의 모형을 통해 전시한 곳입니다. 실제와 같이 생생한 밀랍 조형물들을 활용하여 관람객들로 하여금 마치 타임 머신을 통해 과거로 돌아와 각 원주 민족들의 전통 산촌 생활 공간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 아미족(阿美族) : 아미족이 풍년제를 지내는 성대한 축제 현장을 꾸며놓은 장소로, 관람객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아미족의 다양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복식과 머리 장식들을 볼 수 있으며, 아미족의 축제 분위기를 더욱 생생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 갈마난족(噶瑪蘭族) : 일상 생활 중 휴식을 취하고 잇는 갈마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노개족(魯凱族) : 노개족의 전통 풍습인 ‘탕추천(그네 뛰기)’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네를 타는 노개족은 세 개의 대나무 장대로 삼각형을 이루며 지탱하고 있는데, 장대의 맨 위로 한데 묶고 다시 가운데를 엮어서 하나의 기다란 장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새하족(賽夏族) : 새하족의 직조 기술은 상당히 정교하고 복잡한데, 대개 등나무를 주 재료로 하여 등에 메는 바구니나 상자 등을 만드는 새하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농족(布農族) : 전형적인 고산 민족의 모습으로, 산에서 밭을 가꾸는 모습과 수렵하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배만족(排灣族) : 목조 조각 위에 새겨진 배만족의 정경을 위주로 하여, 배만족의 원시적이고 신비, 독특한 예술 품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야미족(雅美族) : 넓은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는 야미족은 바다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으며, 그 밖에 도제 기술에도 매우 정통하였습니다.
-태아족(泰雅族) : 태아족은 한가할 때 하모니카와 같은 악기를 불며 휴식을 취하였는데, 보통은 그 중에서도 나이든 부녀자들의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비남족(卑南族) : 비남족의 가장 독특한 문화인 ‘소년후제’라는 일종의 성인식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잡아온 원숭이를 창으로 찌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남족 사람들은 이 소년후제 의식으로 소년들의 담력과 사냥 기술을 훈련시켰습니다.
-추족(鄒族) : 추족의 남성들은 모두 천부적인 사냥꾼들이었는데, 그들은 사냥을 통해 얻은 전리품이 곧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1. 대청 전시장
비 정기적으로 문화 원구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거행하는 장소입니다. 평소에는 여러 조각품들로 꾸며진 관람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2. 산촌 생활 형태 전시실
일반 관람객들에게 원주 민족의 전통과 원시적 산야 생활의 모습을 실물 크기의 모형을 통해 전시한 곳입니다. 실제와 같이 생생한 밀랍 조형물들을 활용하여 관람객들로 하여금 마치 타임 머신을 통해 과거로 돌아와 각 원주 민족들의 전통 산촌 생활 공간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 아미족(阿美族) : 아미족이 풍년제를 지내는 성대한 축제 현장을 꾸며놓은 장소로, 관람객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아미족의 다양한 색채와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복식과 머리 장식들을 볼 수 있으며, 아미족의 축제 분위기를 더욱 생생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 갈마난족(噶瑪蘭族) : 일상 생활 중 휴식을 취하고 잇는 갈마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노개족(魯凱族) : 노개족의 전통 풍습인 ‘탕추천(그네 뛰기)’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네를 타는 노개족은 세 개의 대나무 장대로 삼각형을 이루며 지탱하고 있는데, 장대의 맨 위로 한데 묶고 다시 가운데를 엮어서 하나의 기다란 장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새하족(賽夏族) : 새하족의 직조 기술은 상당히 정교하고 복잡한데, 대개 등나무를 주 재료로 하여 등에 메는 바구니나 상자 등을 만드는 새하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농족(布農族) : 전형적인 고산 민족의 모습으로, 산에서 밭을 가꾸는 모습과 수렵하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배만족(排灣族) : 목조 조각 위에 새겨진 배만족의 정경을 위주로 하여, 배만족의 원시적이고 신비, 독특한 예술 품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야미족(雅美族) : 넓은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는 야미족은 바다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으며, 그 밖에 도제 기술에도 매우 정통하였습니다.
-태아족(泰雅族) : 태아족은 한가할 때 하모니카와 같은 악기를 불며 휴식을 취하였는데, 보통은 그 중에서도 나이든 부녀자들의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비남족(卑南族) : 비남족의 가장 독특한 문화인 ‘소년후제’라는 일종의 성인식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잡아온 원숭이를 창으로 찌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남족 사람들은 이 소년후제 의식으로 소년들의 담력과 사냥 기술을 훈련시켰습니다.
-추족(鄒族) : 추족의 남성들은 모두 천부적인 사냥꾼들이었는데, 그들은 사냥을 통해 얻은 전리품이 곧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7.태아족(泰雅族)
태아족의 기원 전설에 따르면, 이들의 탄생 설화는 크게 아래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거대한 바위의 균열에서 태어남
2. 대패첨산의 정상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서 태어남
3. 백석산 위의 늙은 나무 뿌리에서 태어남
태아족의 세계에서는 두 가지 특수한 종족 관념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는 gaga인데, gaga란 일종의 사회 규범으로써, 태아족이 일상 생활을 할 때 풍습과 관련된 계율입니다. Gaga를 위반하는 것은 금기를 범하는 것과 같아 신령의 응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동일한 gaga를 따르는 사람들은 같은 제사 의식을 거행하며, 함께 일하고 그 수확물을 같이 나눕니다.
다른 하나는 rutux라는 신앙 이념으로, 일종의 초자연적인 신령 신앙입니다. Gaga를 위반한 자는 rutux의 처벌을 받게 되며, rutux를 놀라게 하면 병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바깥에서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 약간의 음식을 땅 위에 뿌려 rutux에게 바칩니다.
14개 원주민족 중 얼굴 위에 문신을 새기는 종족은 태아족, 태로각족 및 새하족이 있습니다. 그 중 태아족이 가장 보편적으로, 양 뺨 위에 V 형태의 문신을 새깁니다. 태아족 남성의 문신은 성년의 표시이자 용감한 전사의 상징이며, 여성의 문신은 직물을 짜는데 뛰어나다는 표시로, 직물을 짤 수 없는 태아족 여인은 문신을 새길 수 없어 어떤 이의 구애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도 나이를 많이 먹은 태아족 중에서는 여전히 얼굴에 문신을 새긴 태아족들이 남아 있습니다.
1. 거대한 바위의 균열에서 태어남
2. 대패첨산의 정상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서 태어남
3. 백석산 위의 늙은 나무 뿌리에서 태어남
태아족의 세계에서는 두 가지 특수한 종족 관념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는 gaga인데, gaga란 일종의 사회 규범으로써, 태아족이 일상 생활을 할 때 풍습과 관련된 계율입니다. Gaga를 위반하는 것은 금기를 범하는 것과 같아 신령의 응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동일한 gaga를 따르는 사람들은 같은 제사 의식을 거행하며, 함께 일하고 그 수확물을 같이 나눕니다.
다른 하나는 rutux라는 신앙 이념으로, 일종의 초자연적인 신령 신앙입니다. Gaga를 위반한 자는 rutux의 처벌을 받게 되며, rutux를 놀라게 하면 병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바깥에서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 약간의 음식을 땅 위에 뿌려 rutux에게 바칩니다.
14개 원주민족 중 얼굴 위에 문신을 새기는 종족은 태아족, 태로각족 및 새하족이 있습니다. 그 중 태아족이 가장 보편적으로, 양 뺨 위에 V 형태의 문신을 새깁니다. 태아족 남성의 문신은 성년의 표시이자 용감한 전사의 상징이며, 여성의 문신은 직물을 짜는데 뛰어나다는 표시로, 직물을 짤 수 없는 태아족 여인은 문신을 새길 수 없어 어떤 이의 구애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도 나이를 많이 먹은 태아족 중에서는 여전히 얼굴에 문신을 새긴 태아족들이 남아 있습니다.
8.태로각족(太魯閣族)
태로각족의 문화 풍속은 태아족과 상당히 비슷한데, 두 종족 모두 같은 고산 지역에 거주하고, 수렵과 수경 농업을 통해 생활하며 무지개를 신성시합니다. 그러나 두 종족의 언어만은 서로 고유하여 인근에 분포되어 있으나 왕래가 잦지 않았다고 합니다.
약 3 ~ 4백년 전, 인구의 증가로 농지 및 수렵 지역이 부족해지자, 태로각족은 중앙 산맥을 넘어 동부에 위치한 입무계, 목과계 등의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들 스스로 태로각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정착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현재 태로각은 대만의 국가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태로각 국가공원은 일반인에게는 그저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한 곳이지만, 그 밖에도 풍부한 인문 역사가 숨쉬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태로각족의 조상들은 과거 그들의 토지, 생존, 재산 등을 지키기 위해 일본인들의 침략에 항거하기도 하였습니다. 1914년 일본의 군경 2만 여명이 세 갈래 길로 나누어 태로각 협곡 부락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공격받은 태로각족의 남성들은 약 2500에서 3000명이었습니다. 태로각족은 일제에 완강히 저항하였으나 일본군의 최신식 무기와 우세한 병력에 밀려 받은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습니다. 이후 태로각족은 거대한 석비를 세워 일제에 항복하지 않은 기개를 기념하였습니다.
약 3 ~ 4백년 전, 인구의 증가로 농지 및 수렵 지역이 부족해지자, 태로각족은 중앙 산맥을 넘어 동부에 위치한 입무계, 목과계 등의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들 스스로 태로각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정착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현재 태로각은 대만의 국가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태로각 국가공원은 일반인에게는 그저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한 곳이지만, 그 밖에도 풍부한 인문 역사가 숨쉬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태로각족의 조상들은 과거 그들의 토지, 생존, 재산 등을 지키기 위해 일본인들의 침략에 항거하기도 하였습니다. 1914년 일본의 군경 2만 여명이 세 갈래 길로 나누어 태로각 협곡 부락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공격받은 태로각족의 남성들은 약 2500에서 3000명이었습니다. 태로각족은 일제에 완강히 저항하였으나 일본군의 최신식 무기와 우세한 병력에 밀려 받은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습니다. 이후 태로각족은 거대한 석비를 세워 일제에 항복하지 않은 기개를 기념하였습니다.
9.아미족(阿美族)
아미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대다수의 대만 국민들은 그들의 풍년제를 떠올릴 것입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자태와 경쾌한 가락의 노랫소리는 아미족의 쾌활하고 낙관적인 그들의 성품을 더욱 인상 깊게 남깁니다. 아미족의 체형은 비교적 큰 편인데, 이는 춤을 즐기는 그들의 생활 습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10.부농족(布農族)
대만의 원주 민족 중 가장 먼저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린 부농족은, 그들의 전통음악인 ‘팔부합음’을 통해 대만 부농족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1952년 일본의 한 음악가가 부농족이 좁쌀을 추수할 때 부르는 전통 가요를 연합국에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음악 학자들이 이 노래를 듣고 난 후, 고대의 부락이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화음을 낼 수 있는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부농족의 노래는 당시 서방의 음악가들이 그 동안 알고 있었던 단음과 쌍음 및 화음 등의 이론을 무너뜨리고 음악 기원의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매년 11월에서 12월 사이, 부농족은 좁쌀 파종 축제를 시작하는데, 이는 좁쌀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부락 내 남자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어 함께 ‘기도소미풍수가(祈禱小米豐收歌)’를 부릅니다. 이들 부농족은 또한 노래 소리가 좋아질수록 하늘의 신이 기뻐하여 그 해의 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경애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는데, 이들의 노래에는 단 네 부의 합음이 있으나 각 음역이 다른 음역대로 높아질 때 8개의 서로 다른 음계가 나와 일반 사람들에게 팔부 합음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화음 방식입니다.
1952년 일본의 한 음악가가 부농족이 좁쌀을 추수할 때 부르는 전통 가요를 연합국에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음악 학자들이 이 노래를 듣고 난 후, 고대의 부락이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화음을 낼 수 있는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부농족의 노래는 당시 서방의 음악가들이 그 동안 알고 있었던 단음과 쌍음 및 화음 등의 이론을 무너뜨리고 음악 기원의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매년 11월에서 12월 사이, 부농족은 좁쌀 파종 축제를 시작하는데, 이는 좁쌀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부락 내 남자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어 함께 ‘기도소미풍수가(祈禱小米豐收歌)’를 부릅니다. 이들 부농족은 또한 노래 소리가 좋아질수록 하늘의 신이 기뻐하여 그 해의 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경애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는데, 이들의 노래에는 단 네 부의 합음이 있으나 각 음역이 다른 음역대로 높아질 때 8개의 서로 다른 음계가 나와 일반 사람들에게 팔부 합음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화음 방식입니다.
11.추족(鄒族)
‘고산은 푸르고, 간수는 맑으며, 아리산의 아가씨들은 마치 물과 같이 아름답고, 아리산의 소년들은 산과 같이 장대하다.’ 라는 구절은 고산에 사는 추족 젊은이들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성품은 일반적으로 내향적이며, 오뚝 솟은 코를 보면 추족의 자부심과 긍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추족의 전통 생활은 농업과 수렵을 위주로 하는데, 법령으로 수렵이 제한되어 추족민들이 타지로 많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리산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고산차와 고추 냉이 등으로 인해 몇몇 추족들이 산에 남아 고추냉이를 기르기 시작하였는데, 평지에서 배운 차 재배 기술과 함께 고산 지역을 떠난 추족민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차 잎과 고추냉이 이외에도, 죽순 및 대만 양배추 등이 많이 재배되기도 합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일부 주민들에 의해 화훼 기술이 연구되어, 고가에 거래되는 화훼 사업이 추족 주민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추족의 전통 생활은 농업과 수렵을 위주로 하는데, 법령으로 수렵이 제한되어 추족민들이 타지로 많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리산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고산차와 고추 냉이 등으로 인해 몇몇 추족들이 산에 남아 고추냉이를 기르기 시작하였는데, 평지에서 배운 차 재배 기술과 함께 고산 지역을 떠난 추족민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차 잎과 고추냉이 이외에도, 죽순 및 대만 양배추 등이 많이 재배되기도 합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일부 주민들에 의해 화훼 기술이 연구되어, 고가에 거래되는 화훼 사업이 추족 주민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대동문화예술센터(大東文化藝術中心)、국립과학공예박물관(國立科學工藝博物館)、
내유비문화원구(內惟埤文化園區)
내유비문화원구(內惟埤文化園區)
대동문화예숙센터
大東文化藝術中心 |
국립과학공예박물관
國立科學工藝物館 |
내유비문화원구
內惟埤文化園區 |
대동문화예술센터(大東文化藝術中心)
대동 문화 예술 센터는 2012년 3월 개장한 생활 예술과 현지 문화의 특색을 융합하여 만든 복합 문화 센터로써, 다용도의 공연장을 비롯하여 문화 창의 상업 공간의 시각 전람회관, 독특한 예술 도서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계 시부터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여, 예술 센터의 외관은 자연풍과 인근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 등 주변 생태 환경과 어우러져 동방의 아름다움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국립과학공예박물관(國立科學工藝博物館)
대만 달러 70여억 원을 들여세워진 박물관으로써, 아시아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며, 세계에서는 두 번째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소장량이 매우 방대하여, 총16층, 18개전시실로 이루어져 있고, 주로 생활과 관련된 응용과학 전시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건물외관도 기하학적 도형설계로 꾸며져 있어서, 참신하고 독특한 건축 풍격을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내유비 문화 원구(內惟埤文化園區)
내유비 문화 원구는 까오슝 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41헥타르의 토지 위에 까오슝 시립미술관과 국립 대만 예술 교육원, 조각 공원, 인공 호수, 야외 공연장, 반딧불 사육장, 습지 구역 등이 조성되어 있는 복합 예술 / 문화 / 창의 / 생태 / 교육 공간입니다.
까오슝 시립미술관은 내유비 문화 원구를 대표하는 주요 공간입니다.
까오슝 시립미술관은 대만 남쪽의 유일한 대형 공립 미술관이자 종합 전람 미술관으로, 1994년 6월 정식으로 개장하였습니다.
외부에는 조각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서로 다른 스타일의 조각품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미술관 내에는 국/내외의 다양한 예술품들이 소장되어 있어 정기적으로 국제 규모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창의 미술관’과 ‘어린이 예술 화원’ 등이 있어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대동 문화 예술 센터는 2012년 3월 개장한 생활 예술과 현지 문화의 특색을 융합하여 만든 복합 문화 센터로써, 다용도의 공연장을 비롯하여 문화 창의 상업 공간의 시각 전람회관, 독특한 예술 도서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계 시부터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여, 예술 센터의 외관은 자연풍과 인근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 등 주변 생태 환경과 어우러져 동방의 아름다움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국립과학공예박물관(國立科學工藝博物館)
대만 달러 70여억 원을 들여세워진 박물관으로써, 아시아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며, 세계에서는 두 번째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소장량이 매우 방대하여, 총16층, 18개전시실로 이루어져 있고, 주로 생활과 관련된 응용과학 전시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건물외관도 기하학적 도형설계로 꾸며져 있어서, 참신하고 독특한 건축 풍격을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내유비 문화 원구(內惟埤文化園區)
내유비 문화 원구는 까오슝 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41헥타르의 토지 위에 까오슝 시립미술관과 국립 대만 예술 교육원, 조각 공원, 인공 호수, 야외 공연장, 반딧불 사육장, 습지 구역 등이 조성되어 있는 복합 예술 / 문화 / 창의 / 생태 / 교육 공간입니다.
까오슝 시립미술관은 내유비 문화 원구를 대표하는 주요 공간입니다.
까오슝 시립미술관은 대만 남쪽의 유일한 대형 공립 미술관이자 종합 전람 미술관으로, 1994년 6월 정식으로 개장하였습니다.
외부에는 조각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서로 다른 스타일의 조각품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미술관 내에는 국/내외의 다양한 예술품들이 소장되어 있어 정기적으로 국제 규모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창의 미술관’과 ‘어린이 예술 화원’ 등이 있어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